신사임당 탄생 51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구글 두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12월 5일(음력 10월 29일) ~ 1551년 6월 20일(음력 5월 17일)) 또는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었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인선(仁善)으로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기묘사화로 관직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한 아버지 신명화로부터 성리학을 교육받았으며, 아버지가 아들없이 죽자 경기도 파주의 시댁과 강원도 강릉의 친정집을 오가면서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일찍 병사하였지만 아들 이이는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딸 이매창과 아들 이우 등은 문인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동시대의 여성인 문정왕후, 정난정, 황진이 등과 비교되면서 생전에도 부덕과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존경받았고, 사후에도 아들 율곡 이이의 정치적, 학문적 대성으로 존경하는 어머니상의 전형으로 길이 추앙되었다.
그림, 서예, 시 재주가 탁월하였고, 성리학적 소양도 있었으며,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다. 성리학적 지식과 도학, 문장, 고전, 역사 지식 등에 해박하였다. 태교에서부터 정성을 기울여 아들 주나라 문왕을 얻은 현숙한 부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임당(師任堂)으로 아호를 정하였다. 별호는 인임당(姻姙堂) 또는 임사제(姙師齊)이다.
2007년 한국 여성계의 반대와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전격 도안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는 14대 방손이 된다.
신사임당의 생가인 오죽헌
5만 원 권에 인쇄되고 있는 신사임당
유교적인 규범을 내세웠던 조선 왕조 환경에서 여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결혼과 함께 모든 재능을 묻어야만 했었다.[16] 현재까지 전해오는 고대의 뛰어난 여류 예술가들이 기녀임을 보면, 일반 가정의 부인이 집안 일 대신 예술적 재능을 펼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임당은 이런 사회적 제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아들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임당이 예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두 가지 환경이 크게 좌우했다. 딸의 재능을 키워줄 사윗감을 고르던 아버지 신명화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남편 이원수는 유교사회에서 전형적인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그런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 이원수는 사임당의 자질을 인정해 주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다. 사임당이 친정에서 많은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량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 그는 아내와의 대화에도 인색하지 않아 대화에서 늘 배울 것은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한편으로는 부인인 사임당을 어느정도 멀리하게 된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8B%A0%EC%82%AC%EC%9E%84%EB%8B%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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